AM 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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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2. AM 417

아침의 도시는 지나치게 완벽했다.

하늘을 가로지르는 교통망 위로 무인 셔틀이 일정한 간격을 두고 흘렀다. 건물 사이의 홀로그램 광고는 사람의 동선을 방해하지 않는 높이에서 부드럽게 빛나고, 도로 가장자리의 청소 드론은 사람들이 지나가기 직전 바닥을 정리했다. 누군가는 조깅을 하고 누군가는 커피를 마셨다. 누군가는 가방을 메고 어딘가로 향했다.

평범한 하루였다.

“메런!”

앞에서 케이가 손을 반갑게 흔들었다.

“서둘러!”

그 옆의 딘도 뒤를 돌아보며 소리쳤다.

“늦으면 자리 없어!”

메런은 한숨을 쉬는 척하다가 속도를 높였다.

“알았어, 알았어.”

세 사람은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스타디움 쪽으로 들어갔다.

오늘 경기는 정규리그 상위권 팀끼리의 맞대결이었다. 스타디움 외벽 전체가 경기 예고 홀로그램으로 덮여 있었고, 입장하지 못한 사람들까지 바깥 광장의 초대형 스크린 앞에 모여 있었다. 공의 방향이 크게 바뀔 때마다 사람들의 고개도 한꺼번에 움직였다.

헤비 스매시는 과거의 축구와 닮은 경기였다. 패스로 공을 연결해 상대 골문을 노린다는 기본적인 흐름은 같았지만, 인간의 신체가 강화되고 개인 AI가 움직임을 보조하기 시작하면서 경기의 속도와 힘은 전혀 다른 수준으로 변했다. 축구가 개인의 섬세한 기교와 볼 컨트롤을 최대한 끌어내는 스포츠였다면, 헤비 스매시는 약 3킬로그램에 달하는 공의 특성상 화려한 기교보다는 빠른 패스 전개와 강한 힘을 중심으로 승부가 갈리는 스포츠였다.

선수들의 AI는 순간적인 자세와 균형, 힘의 배분을 보조했고, 강화 장비는 거대한 충격을 견딜 수 있도록 몸을 보호했다. 그래도 그 무거운 공을 원하는 방향으로 정확히 보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선수의 신체 능력뿐 아니라 공을 다루는 기술과 AI와의 호흡, 그리고 팀워크가 경기력을 갈랐다.

중앙 좌측에서 공을 받은 선수가 몸을 돌리는 순간, 상대 공격수와 미드필더가 동시에 길을 좁히며 달려왔다. 왼발을 크게 왼쪽으로 내디디며 상체까지 같은 방향으로 기울였다. 동시에 발목을 단단히 굳힌 오른발을 하키채처럼 세워, 발 안쪽 전체에 공을 붙이듯 다리를 끌었다. 3킬로그램에 달하는 공을 발끝으로 가볍게 다룰 수는 없었다. 그대로 공을 끌어 왼쪽으로 빠져나갈 것 같은 동작이었다.

두 선수가 즉각 반응했다. 짧게 시선을 주고받은 뒤 왼쪽의 공격수는 그대로 압박해 들어왔고, 오른쪽의 미드필더는 간격을 조금 벌리며 몸을 틀었다. 첫 움직임이 페인트일 가능성까지 읽은 것이다. 공이 오른쪽으로 빠지는 순간 그 길을 먼저 막으려는 움직임이었다. 관중들은 어느새 응원이 멎은 줄도 모르고 경기에 빠져들었다.

그러나 공은 앞으로 나아가지 않았다.

공을 끌어낼 듯 움직이던 오른발이 순식간에 공의 위를 스쳤다. 왼발로 지면을 강하게 누르며 몸의 중심을 되돌리는 동시에, 오른발 바깥쪽 전체로 묵직한 공을 옆으로 밀어냈다. 상대 미드필더가 뒤늦게 가속했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오른쪽으로 흘러나온 공을 향해, 두 수비 선수의 시야 뒤에 숨어 달려오던 미드필더가 그대로 뛰어들었다. 그리고 속도를 줄이지 않은 채 발을 휘둘렀다.

쾅.

패스라기보다는 작은 충돌에 가까운 소리가 났다. 그 순간 경기장을 짓누르던 정적이 깨지며 함성과 탄식이 한꺼번에 터져 나왔다. 폭발적인 충격음과 달리 공은 떠오르지 않았다. 지면 바로 위를 미끄러지듯 가로질렀다. 오른쪽 공격수가 공을 향해 달려들며 발을 내밀었다. 공을 세우려 하지 않았다. 발 바깥쪽으로 강하게 밀어내며 궤적을 틀어 놓고 그대로 질주했다. 상대 선수들이 공의 진행 방향과 공격수의 움직임을 읽고 길을 차단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번에도 공격 쪽이 아주 미세하게 빨랐다.

쾅

페널티 구역 밖에서 미드필더가 공을 받으려 했다. 골문 앞의 수비수는 페널티 라인까지 따라붙었다. 나머지 두 명은 비어 있는 공간을 채우며 공격수들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하고 있었다.

미드필더가 그대로 공격 모션을 취했다. 공간을 채우던 수비수 둘이 슈팅각을 막기 위해 간격을 좁혔다.

쾅!

묵직한 충격음이 터지자 관중석 여기저기에서 사람들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양쪽 공격수가 동시에 페널티 라인 안으로 뛰어들었다. 전방에 섰던 수비수는 흠칫 놀라며 재빨리 양팔을 모았다. 자세를 낮추고 왼발을 뒤로 디디며 방어 모션을 취했다.

쾅!

수비수의 방어 모션이 무너지며 굉음이 터졌다. 높게 뜨지 못한 공은 오른쪽으로 튕겨 나갔다. 오른쪽 뒤를 지키던 수비수가 곧장 공을 향해 내달렸다. 오른쪽 공격수 역시 방향을 바꾸며 페널티 안쪽으로 파고들었다. 여기저기서 함성이 터졌다. 관중석에서 일어나는 사람들이 더욱 많아졌다.

수비수는 공을 막을 생각이 없었다.

방향을 미세하게 수정한 채 그대로 공격수를 향해 돌진했다. 페널티 안쪽은 수비수의 영역이었다. 그 선을 넘어서는 순간 공격수에게는 그에 상응하는 각오가 필요했다. 다행히도 공이 공격수에게 먼저 닿았다.

쿵!

모션에 비하면 상당히 작은 충돌음이었다. 돌진하던 수비수가 발을 뻗었지만 묵직한 공은 발끝을 살짝 넘어 안쪽으로 유유히 날아들었다. 공격수는 공을 찬 다리를 그대로 들어 올리며 몸을 최대한 웅크렸다. 다음 순간, 육중한 보호장비를 두른 수비수가 그대로 공격수와 충돌했다.

쾅!

지금까지와는 다른 충격음이었다. 관중석에서는 흐느끼는 듯한 탄식이 터져 나왔다. 공격수는 충격과 함께 페널티 라인 밖으로 튕겨 나갔다. 바닥에 한 번 크게 튄 몸이 그대로 풀리며 몇 바퀴를 굴렀다.

페널티 라인 안.

왼쪽에서 달려 들어간 공격수는 이미 전방 수비수와 왼쪽 뒤 수비수 사이로 방향을 틀고 있었다. 수비수도 상황을 읽었다. 공격수의 경로를 향해 묵직하게 땅을 밀었다. AI를 통해 아슬아슬하게 닿지 않는다는 계산이 들어왔다. 수비수는 돌진하던 추진력을 그대로 살려 점프했다. 그 순간, 공격수의 상황이 달라졌다. 관중석에서 미처 알아차리기도 전에 공격수도 뛰었다.

헤딩이 아니었다.

애초에 헤비 스매시에서 헤딩은 공격 수단이 되지 못했다. 축구처럼 머리로 공을 쳐냈다가는 목이 먼저 버티지 못할 것이다. 공격수는 달려오던 힘에 도약의 힘까지 더해, 마치 슬라이딩을 하듯이 공을 향해 몸을 날렸다. 다급해진 수비수가 손을 뻗었다. 손가락을 끝까지 펼쳤지만 공격수의 몸을 겨우 스쳤을 뿐, 경로를 바꾸지는 못했다.

공격수의 시야에서 수비수는 이미 사라져 있었다. 그의 집중력은 오직 공 하나에만 꽂혀 있었다. 관중들은 숨을 삼켰다. 마치 스타디움 전체가 일어나 있는 것 같았다.

짧은 순간. 그 사이 AI는 전달 가능한 가장 짧은 형태로 계산값을 보냈다.

‘히트 27.31%.’

‘꽤나 긍정적인데?’

공격수는 이미 상체를 비틀어 둔 채 짧게 응답했다. 시선은 한 번도 공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삐.’

짧은 기계음에 공격수의 귀가 살짝 움직였다. 접어두었던 상체와 팔이 반대 방향으로 한꺼번에 펼쳐졌다. 상체에서 만들어진 힘이 허리를 지나 골반으로 이어졌다. 골반의 회전이 허벅지로 전달되자 양다리가 크게 벌어졌다. 몸 전체가 하나의 축을 중심으로 비틀리듯 돌아갔다. 공격수는 만들어낸 에너지를 하나도 흘리지 않으려는 듯 마지막 회전을 발목과 발등까지 이어갔다.

쾅!

발등이 공을 때렸다.

‘89.68%.’

‘들어갔다!’

이번에는 스타디움 전체를 울릴 만큼 큰 소리가 터졌다. 공은 거의 직선에 가까운 궤적으로 골문을 향해 날아갔다. 골키퍼가 몸을 던졌다. 두 팔이 공의 궤적에 닿았다. 순간 골키퍼의 몸까지 뒤로 기울었다. 공의 궤적이 아주 조금 틀어졌다. 하지만 멈추지는 않았다. 공은 틀어진 궤적 그대로 골문을 통과했다.

쿠왕!

공이 뒤쪽 완충벽에 처박혔다. 낮고 묵직한 진동이 관중석 바닥까지 전해졌다. 잠깐의 정적. 그리고 스타디움이 폭발했다. 수만 명의 함성이 한꺼번에 터져 나왔다.

메런은 아무런 말을 못하고 있었다. 시선은 여전히 골대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전율이 몸을 타고 흐르고 있었다.

“저거 봤냐?”

딘이 메런의 어깨를 쳤다.

“봤어.”

“저 위치에서 바로 때린다고?”

“케인이니까 할 수 있는 거야.”

메런은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어떻게 된 거야?”

케이가 웃으면서 물었다.

“오, 마이 가쉬. 이 멋진 장면을 이해하지 못 한다니!”

딘이 말도 안 된다는 듯이 말했다.

“그래그래, 미래의 프로님.”

“케인이 누군지는 알지?”

메런이 장난스럽게 물었다.

“야!”

셋은 서로를 밀치며 웃었다. 경기가 끝났을 때는 해가 조금 기울어 있었다. 관중들이 천천히 출구 쪽으로 빠져나갔다.

케이가 문득 말했다.

“이제 진짜 얼마 안 남았네.”

메런이 눈을 깜빡였다.

“뭐가?”

딘이 어이없다는 얼굴을 했다.

“성인식! 너 진짜 아무 생각 없냐?”

“축구 이야기인 줄 알았지!”

그 말이 나오자 셋 사이의 분위기가 아주 조금 달라졌다.

성인식은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일이었다. 부모도, 선생님도, 조금 전 경기장에서 뛰던 선수들도 모두 같은 과정을 거쳤다. 며칠 뒤면 세 사람 역시 AI Core를 융합한다. 너무나 당연한 일이어서 특별할 것도 없었다.

다만 그 뒤의 자신이 지금과 얼마나 같을지는 아무도 알 수 없었다.

어떤 특질이 나타날지, 무엇을 잘하게 될지, 그로 인해 어떤 길을 선택하게 될지. 미리 알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케이가 먼저 입을 열었다.

“난 거의 정했어.”

“뭘?”

“결과 나오고 말해줄게.”

“아직 적성도 안 나왔는데?”

딘이 웃다가 메런을 봤다.

“너는?”

메런은 잠깐 대답을 미뤘다.

스타디움 홀로그램에는 방금 끝난 경기의 하이라이트가 반복되고 있었다. 골문 구석으로 꽂히는 마지막 슈팅.

“...아직.”

케이가 메런을 힐끗 보며 말했다.

“너 스매시 아니었어?”

“스매시가 맞는데…”

“난 스매시.”

딘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메런, 뭐든 결정하면 제일 먼저 나한테 말해.”

“왜 네가 제일 먼저야?”

“내가 먼저 물어봤으니까.”

“억지인데.”

“됐고, 나부터.”

메런은 피식 웃었다.

“그래그래.”

돌아가는 길, 세 사람은 동네 식당에 들렀다. 문을 열자 작은 종이 울렸다.

“어서 와.”

카운터 뒤에서 익숙한 얼굴이 일행을 반겼다. 메런이 눈을 크게 떴다.

“어? 아저씨?”

“그래, 오랜만이지?”

어릴 때부터 알고 지낸 동네 아저씨였다. 연구 프로젝트 때문에 한동안 다른 지역에 가 있었다. 케이가 반색했다.

“프로젝트 끝났어요?”

“응. 이번 BM 발굴도 마감.”

“성과는요?”

“나쁘지 않았지.”

그는 별일 아니라는 듯 웃으며 조리대 앞에 섰다. 딘이 물었다.

“근데 연구하시던 분이 갑자기 식당이에요?”

“프로젝트 끝났으니까. 오랜만에 사람들 얼굴도 보고 싶었거든.”

메런이 피식 웃었다.

“아저씨다운 이유네요.”

그 말에 모두가 웃었다.

식사 중에는 학교 이야기가 나왔고, 축구 이야기가 나왔고, 자연스럽게 성인식 이야기도 나왔다.

“딘은 신체형일 것 같아.”

케이가 말했다.

“당연하지.”

딘은 기다렸다는 듯 대답했다.

“케이는 두뇌형.”

“왜?”

“딱 봐도 그렇잖아.”

“그게 무슨 기준인데.”

“그냥 보면 알아.”

딘이 이번에는 메런을 바라봤다.

“너는 밸런스.”

“나는 왜?”

“축구도 잘하고, 머리도 나쁘진 않으니까.”

“나쁘진 않다니.”

“칭찬이야.”

“전혀 아닌 것 같은데.”

케이가 웃었다.

“근데 그런 거랑 실제 특질은 상관없다잖아.”

“알아. 그래도 진짜 1도 상관이 없겠어?”

딘이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그래도 넌 두뇌형이야.”

누가 어떤 특질이 나왔으면 좋겠다는 이야기. 운동부였는데 두뇌형이 나왔다는 선배 이야기. 그건 그 선배가 특이한 거라는 이야기. 누가 먼저 겁먹고 도망갈 것 같다는 이야기. 수술이 끝나고 무얼 하자는 이야기. 특별한 내용은 없었다.

평범한 대화였다. 평범한 웃음이었다.

해질녘, 셋은 갈림길에서 헤어졌다. 딘이 다시 메런을 불렀다. “야.”

“응?”

“진짜 결정하면 말해라.”

메런은 손을 흔들었다.

“알았다니까.”

집에 돌아오자 거실 한쪽에서 어머니가 작업을 하고 있었다. 공중에 떠 있는 설계도가 손짓에 맞춰 이동하고, 접혔다가 다시 펼쳐졌다. 그 앞에는 여동생이 바닥에 엎드려 화면을 보고 있었다.

“다녀왔어요.”

메런이 지나가며 여동생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었다.

“또 왜.”

“그냥.”

여동생은 귀찮다는 듯 고개를 피하면서도 화면에서는 눈을 떼지 않았다.

“왔니, 재밌었어?”

“네.”

어머니는 설계도를 잠시 줄이고 메런을 바라봤다.

“성인식 전까지는 계속 집에 있는 거에요?”

“응. 당분간은. 건축 프로젝트도 거의 끝나가.”

“아빠도 곧 오실 거야.”

“진짜?”

여동생이 먼저 고개를 들었다. 메런의 표정도 조금 밝아졌다. “진짜요?”

“아마 내일쯤. 저녁은 먹고 들어왔니?”

“아뇨. 일부러 안 먹고 왔어요.”

“그래, 조금만 이따 같이 먹자.”

그날 저녁도 별다를 것 없이 지나갔다.

메런은 침대에 누워 낮에 본 경기 장면을 떠올렸다. 케인 선수가 보여준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운동능력. 골문을 지나 완충벽에 날아가서 꽂힌 공, 그리고 충격음과 진동. 이어진 관중석의 폭발하는 함성과, 친구들이 던진 질문. 성인식이 끝나면 무엇을 할 것인가. 대답은 아직 하지 않았지만 사실 마음속 어딘가에는 오래전부터 하나의 장면이 있었다.

수만 명이 지켜보는 경기장. 그 한가운데 서 있는 자신.

메런은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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