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7. D-1
성인식을 하루 앞둔 교실은 평소보다 조금 들떠 있었다.
수업 시작을 알리는 소리가 울렸는데도 교실은 쉽게 조용해지지 않았다. 여기저기서 비슷한 이야기가 오갔다.
“난 무조건 신체특질이야.”
앞자리 학생이 자신 있게 말했다.
“무슨 근거로?”
“우리 아빠가 신체특질이잖아.”
“그게 너랑 무슨 상관인데.”
“유전 아니야?”
“아니라던데?”
옆에서 듣고 있던 학생이 끼어들었다.
“우리 누나는 운동 하나도 안 했는데 신체특질 나왔대.”
“진짜?”
“응. 본인도 두뇌 나올 줄 알았대.”
다른 쪽에서는 전혀 다른 이야기가 들렸다.
“아픈 건 아니겠지?”
“수술인데 안 아프겠냐?”
“마취하잖아.”
“깨고 나서 말이야.”
“왜 벌써 겁먹냐?”
“안 무섭냐, 그럼?”
대답은 나오지 않았다. 잠깐 조용해졌던 학생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조금.”
이번에는 아무도 놀리지 않았다. 내일이면 모두 같은 일을 겪는다. 매년 수많은 사람들이 거쳐 온 성인식이었다. 위험한 일도, 특별히 드문 일도 아니었다. 그래도 자신의 차례가 되는 건 다른 문제였다.
한 학생이 손가락으로 책상 위 화면을 넘겼다.
“난 AI 이름도 정했어.”
“벌써?”
“응.”
“뭔데?”
“비밀.”
“그럴 거면 왜 말했냐?”
주변에서 웃음이 터졌다. 누군가는 벌써 자신에게 어떤 특질이 나올지 계산하고 있었고, 누군가는 성인식이 끝나면 무엇을 할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화면 위로 여러 직업이 떠다녔다.
우주개척.
연구.
도시 설계.
의료.
스포츠.
에셜론.
그러다 뒤쪽에서 누군가 물었다.
“근데 별 변화 없으면 어떡하냐?”
다른 학생이 어깨를 으쓱했다.
“그냥 평범하게 사는 거지.”
잠깐 정적이 흘렀다.
“그게 제일 무섭잖아.”
교실 여기저기서 웃음이 터졌다. 하지만 완전히 농담만은 아니었다.
그때 교실 문이 열렸다.
선생님이 들어오자 학생들이 하나둘 자리로 돌아갔다.
“다 떠들었냐?”
“아니요.”
누군가 대답했다.
“그럼 계속 떠들어. 수업은 내일 하자.”
학생들이 웃었다. 선생님도 웃다가 책상 앞에 섰다.
“농담이고. 어차피 오늘 너희 머릿속에 수업이 들어갈 것 같지도 않으니까 마지막 안내만 다시 한다.”
학생들의 시선이 조금씩 앞으로 모였다.
“각자 지정된 기관과 시간 다시 확인하고. 오늘 늦게까지 놀지 말고. 괜히 인터넷에서 이상한 후기 찾아보면서 겁먹지도 말고.”
몇 명이 슬쩍 화면을 껐다. 선생님이 그쪽을 바라봤다.
“이미 보고 있었지?”
웃음이 터졌다.
“그리고 특질 예상한다고 오늘 하루 종일 서로 평가하지 마. 내일 확인하면 될 일을 왜 오늘 싸우고 있어.”
“선생님은 뭐 나오셨어요?”
“그걸 지금 처음 묻냐?”
“다시 듣고 싶어요.”
“두뇌.”
누군가 작게 말했다.
“역시.”
선생님이 바로 그쪽을 바라봤다.
“왜 역시인데?”
“그냥요.”
“그 ‘그냥’이 내일 제일 많이 틀릴 거다.”
다시 웃음이 터졌다. 메런도 웃었다.
그 옆에서 딘이 팔짱을 낀 채 말했다.
“그래도 난 뻔하지 않냐?”
“뭐가?”
“신체.”
케이가 딘을 돌아봤다.
“그건 나도 그렇게 생각해.”
메런이 웃었다.
“나도.”
“당연하지. 몇 년을 운동했는데.”
딘이 턱을 괴었다.
“근데 두뇌 나오면?”
메런은 잠시 딘을 바라봤다.
“내가?”
“응.”
메런이 피식 웃었다.
“상상이 안 되는데.”
케이가 말했다.
“아까 선생님 말 안 들었지?”
“들었어.”
“근데?”
“그래도 나는 신체겠지.”
딘이 고개를 저었다.
“넌 밸런스라니까.”
“둘이 아주 서로 진단을 해라.”
케이가 고개를 저었다.
수업은 평소보다 느리게 흘렀다. 쉬는 시간이 될 때마다 이야기는 다시 성인식으로 돌아왔다. 누군가는 성인식이 끝나면 바로 여행을 가겠다고 했다. 누군가는 부모와 같은 일을 해보고 싶다고 했다. 누군가는 아직 아무것도 정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중 몇 명은 정해놓고도 계속 바꿨다.
“나 연구 쪽 갈까?”
“아까 우주개척 간다며.”
“생각해 보니까 무서울 것 같아서.”
“십 분 만에 꿈을 포기하냐?”
“현실적인 판단이지.”
점심시간이 끝날 즈음 케이가 메런을 돌아봤다.
“그래서 너는?”
“뭐가?”
“성인식 끝나고. 진짜 뭐 할 건데?”
메런은 잠깐 생각하는 척했다. 사실 대답은 오래전부터 정해져 있었다.
“난 헤비 스매시 선수가 될 거야.”
딘이 바로 웃었다.
“그건 질문할 필요도 없었네.”
케이도 웃었다.
“이미 계약서까지 준비했을 것 같은데.”
“아직 스카우트도 안 왔거든.”
“성인식 끝나면 줄 서겠지.”
“그랬으면 좋겠다.”
메런은 웃었다. 며칠 동안 머릿속을 떠나지 않던 VANGUARD와 에셜론의 문제도 그 순간만큼은 조금 멀어졌다.
교실 안의 모두가 내일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아주 평범하게. 기대하고. 겁먹고. 허세를 부리고. 웃으면서. 메런도 그중 하나였다.
마지막 수업이 끝났다.
선생님은 나가는 학생들을 붙잡고 한 번 더 말했다.
“내일 학교로 오는 거 아니다. 각자 지정된 곳으로 바로 가.”
“네!”
“시간 늦으면?”
“안 돼요!”
“알면 됐다.”
학생들이 웃으며 교실을 빠져나갔다. 복도도 평소보다 시끄러웠다. 다른 반에서도 비슷한 이야기가 들렸다.
“내일 연락해!”
“너 먼저 끝나면 말해줘.”
“사진 찍을 수 있나?”
“수술실에서 뭘 찍어!”
학교 밖으로 나오자 도시의 풍경도 평소와 조금 달라 보였다. 달라진 것은 사실 많지 않았다. 거리의 대형 화면 한쪽에 성인식 대상자를 위한 안내가 반복되고 있었다.
[NEURAL LINK PROCEDURE D-1]
[지정 기관 및 방문 시간을 확인하여 주십시오]
[등록 정보 변경 시 사전 확인 바랍니다]
지나가는 어른들은 별 관심 없이 화면을 지나쳤다. 누군가는 통화를 했고, 누군가는 장을 봤고, 누군가는 카페에 앉아 있었다. 매년 반복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교복을 입은 학생들은 달랐다. 몇 명은 화면 앞에 멈춰 자신의 시간을 다시 확인했고, 누군가는 친구의 어깨 너머로 화면을 들여다봤다.
“너 몇 시야?”
“아홉 시.”
“난 열 시 반.”
“좋겠다. 더 잘 수 있네.”
“내가 잠이 오겠냐?”
케이가 자기 단말을 확인했다.
“나 엄마가 아까부터 세 번 확인했어.”
딘이 말했다.
“우리 집은 네 번.”
메런이 웃었다.
“경쟁하냐?”
“우리 엄마가 이겼네.”
세 사람은 한동안 같은 길을 걸었다. 조금 전까지 성인식 이야기를 하던 학생들도 하나둘 다른 길로 흩어졌다. 익숙한 갈림길이 나왔다.
케이가 손을 들었다.
“내일 보자.”
딘이 말했다.
“성인식 끝나고 밥 먹자.”
케이가 장난스럽게 덧붙였다.
“특질 잘 나오면 내가 쏜다.”
메런이 물었다.
“잘 안 나오면?”
케이는 잠시 생각했다.
“...그때는 네가 사.”
“왜 내가 사!”
“위로해줘야지.”
“위로받는 사람이 사는 거냐?”
딘이 끼어들었다.
“난 얻어먹기만 하면 돼.”
“넌 빠져.”
세 사람의 웃음소리가 골목까지 이어졌다.
집에 돌아오자 익숙한 저녁 냄새가 났다.
현관에서 신발을 벗고 있는데 거실 쪽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왔어?”
여동생이 바닥에 앉아 화면을 보고 있었다.
“응.”
메런이 지나가며 여동생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었다. 여동생이 바로 고개를 피했다.
“하지 마.”
“왜.”
“애도 아니고.”
메런은 대꾸하지 않고 주방으로 향했다. 잠시 뒤 여동생은 흐트러진 머리를 손으로 정리하면서 메런의 뒤를 한번 쳐다봤다.
식탁에는 어머니가 저녁을 준비하고 있었다. 아버지도 이미 앉아 있었다.
“왔냐.”
“네.”
아버지가 메런을 한번 보더니 말했다.
“긴장되냐?”
“별로요.”
거실에서 여동생이 말했다.
“거짓말.”
메런이 돌아봤다.
“뭘 안다고.”
“아까 들어올 때 평소보다 조용했어.”
“너 화면 보고 있었잖아.”
“다 보여.”
어머니가 웃었다.
“둘 다 와서 밥 먹어.”
여동생이 가장 먼저 자리로 왔다. 식사가 시작되자 대화는 자연스럽게 내일 이야기로 흘렀다.
어머니가 먼저 물었다.
“친구들은 어때?”
“다들 비슷해요. 기대하는 애도 있고, 겁먹은 애도 있고.”
“너는?”
“저요?”
메런이 잠시 생각했다.
“기대되는 쪽?”
어머니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정도면 됐네.”
잠시 뒤 메런이 물었다.
“엄마는 성인식 전에 뭐 나올 것 같았어요?”
어머니는 망설이지 않았다.
“두뇌특질.”
여동생이 밥을 먹다 고개를 들었다.
“엄마가?”
어머니가 눈을 가늘게 떴다.
“왜.”
“그냥.”
“그냥 뭐?”
“지금은 안 그래 보여.”
“너 오늘 밥 그만 먹고 싶니?”
여동생이 조용히 밥을 한 숟갈 떠먹었다. 메런이 웃었다.
“왜 두뇌라고 생각했어요?”
“그때도 구조나 설계를 좋아했으니까. 학교에서도 계속 그쪽이었고.”
“근데 신체특질 나왔잖아요.”
“그렇지.”
어머니가 웃었다.
“나도 처음엔 좀 놀랐어.”
“그래서 현장으로 간 거예요?”
“처음에는 현장을 많이 다녔지. 신체특질이면 그래야 하는 줄 알았어. 직접 돌아다니면서 확인하고, 구조물 올라가고, 공사 상황 보는 일이 많았으니까.”
어머니는 잠시 생각하다 말을 이었다.
“근데 그게 나쁘지만은 않았어. 도면으로만 볼 때랑 실제 공간에서 보는 건 많이 다르거든.”
“그래서 지금 설계하는 데 도움이 돼요?”
“많이.”
어머니가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은 전체 설계 쪽을 주로 맡지만, 아직도 가끔 현장 나가. 직접 보는 게 제일 빠를 때가 있거든.”
여동생이 말했다.
“그래서 맨날 신발 더러워져서 와?”
“가끔.”
“아빠는?”
이번에는 모두의 시선이 아버지에게 향했다. 아버지가 웃었다.
“나는 신체특질 나올 줄 알았지.”
여동생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아빠가?”
“너 아까부터 왜 그러냐.”
“아빠가 운동했어?”
아버지가 어이없다는 듯 메런을 봤다.
“얘한테 아무 말도 안 했냐?”
메런이 웃었다.
“굳이요?”
“아빠가 소싯적에 축구 좀 했지. 암.”
어머니가 옆에서 말했다.
“또 시작이네.”
“왜. 사실이잖아.”
“‘좀’의 기준이 늘 바뀌어서 그렇지.”
여동생이 아버지를 빤히 바라봤다.
“잘했어?”
“그럼.”
“오빠보다?”
아버지가 잠시 멈췄다. 메런이 먼저 웃었다.
“아마 그럴걸? 동네에서도 아직 유명할 거야.”
메런이 맞장구를 쳐줬다. 아버지가 물을 한 모금 마셨다.
“아빠가 신체특질이었으면, 케인 같은 선수가 됐지 않았을까?”
“에이, 거짓말.”
여동생이 입을 삐죽거리며 말했다.
“아빠가 언제 거짓말 하든?”
식탁에 웃음이 퍼졌다. 메런이 물었다.
“그래서 신체 나올 줄 알았어요?”
“그랬지. 나도 운동 오래 했으니까.”
“근데 밸런스였고.”
“응.”
아버지는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처음엔 조금 애매하다고 생각했다.”
메런이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밸런스가요?”
“그때는 그랬어. 뭔가 하나 확실하게 나올 줄 알았거든. 신체면 신체, 두뇌면 두뇌.”
“근데요?”
“살다 보니까 꼭 하나일 필요는 없더라.”
아버지는 잠시 말을 멈췄다.
“이것저것 해봤고, 그러다 우주 쪽 일이 재미있어졌어.”
“특질 때문에 간 건 아니고요?”
“도움은 됐겠지.”
아버지가 말했다.
“근데 그것 때문에 선택한 건 아니야.”
메런은 가만히 듣고 있었다. 어머니가 말했다.
“특질은 네가 어떤 걸 잘할 수 있는지 알려주는 데는 도움이 돼.”
아버지가 말을 이었다.
“그렇다고 뭘 해야 하는지까지 정해주는 건 아니고.”
여동생이 메런을 봤다.
“오빠는 신체일 것 같은데.”
메런이 피식 웃었다.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응.”
“왜?”
“맨날 공 차잖아.”
“봐. 역시.”
어머니가 웃었다.
“벌써 결론 냈네.”
메런이 어깨를 으쓱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죠.”
식사가 끝날 즈음 아버지가 문득 물었다.
“메런.”
“네?”
“성인식 끝나면 제일 하고 싶은 게 뭐냐?”
이번에는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프로 헤비 스매시 선수가 되고 싶어요.”
아버지는 잠시 메런을 바라봤다.
“그럼 해.”
메런이 눈을 깜빡였다. 아버지가 웃었다.
“특질은 내일 나오고.”
그리고 덧붙였다.
“네가 하고 싶은 건 지금 이미 알고 있잖아.”
메런은 잠시 아버지를 바라보다가 웃었다.
“네.”
어머니도 웃었다.
“결과부터 보고 겁먹지는 말고.”
여동생이 말했다.
“프로 되면 나 경기장 데려가.”
“싫어.”
“왜!”
“네가 오면 시끄러워.”
“엄마!”
“벌써 프로 된 줄 알겠다.”
어머니가 웃었다. 다시 식탁이 시끄러워졌다.
밤.
메런은 자기 방으로 들어왔다. 문을 닫자 집 안의 소리가 조금 멀어졌다. 벽에는 좋아하는 케인 선수의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어릴 때 받은 작은 트로피.
학교 대회 사진.
경기 기록.
직접 짠 훈련 계획.
책상 옆에는 오늘도 사용한 공이 놓여 있었다. 메런은 침대에 앉아 한동안 방을 둘러봤다. 엄마는 두뇌특질일 거라고 생각했다. 신체특질이 나왔다. 아빠는 신체특질일 거라고 생각했다. 밸런스형이 나왔다. 둘 다 예상대로 되지는 않았다. 그런데도 지금은 각자 자기 일을 하고 있었다. 메런은 자기 손을 내려다봤다. 정말 특질은 지금까지의 나와 상관이 없는 걸까. 잠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시선이 다시 축구공으로 향했다. 어릴 때부터 거의 매일 차온 공이었다. 딘과 수없이 겨뤘고, 수없이 이기고 졌다. 메런은 피식 웃었다.
“에이.”
침대에 몸을 눕혔다.
“그래도 나는 신체특질이겠지.”
휴대폰을 켰다. 화면 중앙에 짧은 문장이 떠 있었다.
D-1
성인식.
메런은 화면을 잠시 바라보다가 껐다. 뱅가드에 대한 의문도, 에셜론에 대한 호기심도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보다 훨씬 오래된 미래가 있었다. 공을 차고. 선수가 되고. 스타디움에 서는 것. 메런은 눈을 감았다.
평범한 메런으로 살아가는 마지막 하루가 그렇게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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