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M 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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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4. 질문

아침은 평소와 같았다.

창문으로 들어오는 빛도, 등교길에 마주친 사람들도, 교실의 소음도 어제와 다르지 않았다. 달라진 것은 메런뿐이었다. 수업 화면에는 복잡한 도표와 글자들이 떠 있었지만 눈에는 조금도 들어오지 않았다. 시선은 화면을 향하고 있었지만 머릿속에서는 어젯밤의 장면이 몇 번이고 되풀이되고 있었다. 손가락은 책상 가장자리를 연신 두드리고 있었다.

‘꿈.’

잠시 손가락이 멈췄다.

‘아니, 정말 꿈이었나?’

메런은 고개를 저었다. 옆자리의 케이가 메런을 잠시 바라보더니 작은 쪽지를 밀었다.

- 오늘 끝나고 케이크 먹으러 갈래?

메런은 쪽지를 한동안 바라보다가 짧게 적었다.

- 오늘은 됐어. 먼저 가. 미안.

수업이 끝나자 케이와 딘은 몇 번이나 뒤를 돌아보며 교실을 나갔다. 메런은 마지막까지 멍하니 자리에 남아 있다가 가방을 들었다. 그가 향한 곳은 학교 도서관이었다. 휴대폰으로 검색하면 더 간단했지만, 학교 정보망에서는 더 많은 공개 아카이브를 검색할 수 있었다. 메런은 구석 자리에 앉아 검색창을 열었다. 그는 잠시 손을 멈췄다. 어젯밤 꿈속에서는 누구도 그 이름을 말하지 않았다. 그런데 깨어난 직후부터 머릿속에 한 단어가 또렷하게 남아 있었다.

VANGUARD. (뱅가드)

메런은 검색을 실행했다. 결과는 즉시 나타났다.

[반체제 무장 조직]

[위험 등급: 최상]

[주요 테러 기록]

[도시 기반 시설 파괴 시도]

[ECHELON과 다수 교전]

메런의 눈썹이 서서히 찌푸려졌다. 그가 꿈에서 본 사람들은 전투 중이었다. 무기도 들고 있었다. 그것만 보면 기록과 크게 다르지 않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상했다. 우리는 적을 죽이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 교전을 피하는 것이 상위 수칙이다. 그 말들이 자꾸 떠올랐다. 공식 기록 속 뱅가드는 무차별적인 반체제 무장조직에 가까웠다. 그런데 꿈속의 그들은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교전을 피하려 했다.

“……이상해.”

메런은 화면을 위아래로 넘겼다. 기사와 보고서는 많았지만 대부분 비슷한 내용을 반복했다. 사건 이름, 피해 지역, 에셜론의 대응. 정작 현장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몇 줄 되지 않았다. 그는 문득 다른 방향으로 검색했다.

“최근 에셜론 피해 규모를 알려줘.”

학교 정보 AI가 자료를 정리했다.

작전 횟수. 장비 손실. 시설 피해. 인명 피해 규모.

메런은 화면에 표시된 숫자를 읽다가 고개를 들었다.

“사망자는?”

잠시 후 답이 돌아왔다.

“접근 권한이 없습니다.”

메런이 눈을 가늘게 떴다.

“왜?”

“사망자 세부 정보는 에셜론의 비공개 작전 정보에 포함됩니다.”

그럴 수도 있었다. 작전 중 발생한 피해라면 공개되지 않는 정보가 있을 수 있다. 메런은 잠시 생각하다 다시 물었다.

“그럼 경상자와 중상자는?”

“해당 수치를 공개할 경우 비공개 사망자 수의 역산이 가능합니다. 접근이 제한됩니다.”

메런의 손이 멈췄다. 그는 조금 전의 화면을 다시 바라봤다. 전체 인명 피해 규모는 공개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 안에서 몇 명이 다쳤고, 몇 명이 죽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작전 지역. 파손된 시설. 장비 손실. 에셜론의 대응.

기록은 많았다. 사람에 관한 정보만 일정한 선에서 끊겨 있었다.

“……이 정보는 누가 볼 수 있어?”

“에셜론 내부에서도 해당 정보에 필요한 접근 등급 이상을 보유한 인원만 열람할 수 있습니다.”

메런은 잠시 화면을 바라봤다.

“그러니까 에셜론 작전 정보라서, 에셜론 소속이라고 전부 볼 수 있는 건 아니고 일정 등급 이상만 볼 수 있다는 거지?”

“그렇습니다.”

메런은 다시 기록을 훑어봤다. 정보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자신이 볼 수 없는 정보였다. 그렇다고 그것이 꿈에서 본 것이 사실이라는 뜻은 아니었다. 메런은 잠시 화면을 바라보다가 검색창을 닫았다.

도서관을 나오자 학교는 한결 조용해져 있었다.

교실 대부분은 이미 불이 꺼져 있었고, 복도를 오가는 학생도 드물었다. 멀리 운동장 쪽에서 간간이 공을 차는 소리와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메런은 천천히 계단을 내려갔다. 정보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자신이 볼 수 없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그것이 꿈에서 본 것이 사실이라는 뜻은 아니었다. 그저 확인하고 싶었던 정보를 확인할 수 없다는 것이 답답했다.

메런은 건물을 나섰다. 늦은 오후의 빛이 운동장 한쪽을 길게 비추고 있었다. 먼저 집으로 돌아간 학생들이 많아 평소보다 한산했지만, 아직 몇몇은 운동장과 벤치 주변에 남아 있었다.

“메런!”

익숙한 목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퍽.

무언가가 어깨를 세게 때리고 바닥으로 떨어졌다. 축구공이었다.

“야!”

딘이 운동장 쪽에서 뛰어왔다.

“뭐 해? 그걸 왜 맞아?”

메런은 바닥에 떨어진 공과 딘을 번갈아 바라봤다. 평소라면 어렵지 않게 받아냈을 공이었다.

“……아, 딴생각했어.”

딘이 걸음을 늦췄다.

“딴생각?”

딘은 고개를 크게 옆으로 눕히며 정말 이해가 안 된다는 얼굴로 물었다.

“공보다 중요한 게 있다고?”

메런이 피식 웃었다.

“오늘은 있었어.”

“뭔데?”

메런은 잠시 입을 열려다 말았다. 꿈을 꿨고, 그게 이상해서 찾아봤고, 공개된 기록과 기억은 달랐고, 정작 궁금한 정보는 볼 수 없었다. 처음부터 설명하려니 자신이 생각해도 이상한 이야기였다.

“별거 아니야.”

메런은 발끝으로 공을 들어 올렸다.

툭.

무릎에 한 번. 다시 발등. 딘이 손짓했다.

“패스.”

메런이 발등에 있는 공을 그대로 띄워서 찼다. 공은 딘에게 날아갔다. 딘은 한 걸음 옆으로 움직이며 발 등으로 살짝 차 올리며 공의 힘을 죽였다. 공이 바닥에 닿기도 전에 다시 메런에게 돌아왔다. 이번에는 메런이 그대로 받아냈다. 첫 터치로 방향을 틀고, 두 번째 터치와 동시에 다시 찼다.

턱.

딘이 받았다.

턱.

다시 메런. 처음에는 가볍던 공의 속도가 조금씩 빨라졌다. 서로가 어디로 보낼지 알고 있는 것처럼 공이 두 사람 사이를 오갔다. 딘이 몸 바깥쪽으로 공을 빼며 강하게 차자 메런은 발을 갖다 대는 순간 힘을 죽였다. 그대로 몸을 돌려 반대쪽으로 보냈다.

“오.”

딘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이번에는 더 강한 공이 날아왔다. 메런도 웃었다.

조금 전까지 머릿속을 채우고 있던 기록과 숫자들이 어느새 뒤로 밀려나 있었다. 운동장에서 학생 몇 명이 두 사람을 바라봤지만, 메런과 딘은 신경 쓰지 않았다. 딘이 공을 받으며 말했다.

“딴생각 끝났냐?”

메런이 달려들었다.

“공이나 줘.”

딘이 웃으며 공을 운동장으로 차냈다.

“빨리 와~”

친구들이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가자.”

메런은 곧바로 그 뒤를 쫓았다.

공이 운동장 위를 굴렀다.

딘이 먼저 달려가자 메런이 속도를 높였다. 딘이 공을 옆으로 흘려주자 메런은 그대로 받아 한 명을 지나쳤다. 앞을 막아선 친구가 발을 뻗었지만, 메런은 공을 살짝 옆으로 밀어 피했다.

“야, 여기!”

옆에서 손을 들고 뛰어가는 친구에게 공을 내줬다. 곧바로 다시 패스가 돌아왔다. 메런이 그대로 슛을 날렸고, 공은 골대를 살짝 벗어나 운동장 끝으로 굴러갔다.

“아!”

딘이 웃음을 터뜨렸다.

“딴생각 아직 안 끝났는데?”

“시끄러.”

메런도 웃으며 다시 공을 향해 뛰었다. 조금 전까지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던 뱅가드와 에셜론의 기록은 어느새 멀어져 있었다. 친구들이 공을 부르고 서로를 놀리는 목소리가 한산한 운동장에 길게 울렸다.

그 시각. 메런이 검색창을 닫은 뒤에도 그의 질문은 사라지지 않았다.

VANGUARD에 관한 검색.

에셜론의 작전 피해.

공개되지 않은 사망자와 부상자 정보.

그리고 그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권한.

서로 떨어져 있던 몇 번의 질문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하나의 흐름으로 묶였다. 그것을 누가 물었는지, 무엇을 궁금해했는지, 질문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아무도 들여다보지 않는 깊은 곳에서 그 흐름은 조용히 기록되었다.

그리고 분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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