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3. 악몽
메런은 어둠 속에서 눈을 떴다.
탄 냄새와 먼지, 금속 냄새가 뒤섞여 있었다. 자신의 거친 숨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멀리서는 짧고 불규칙한 총성이 이어졌다. 상황을 파악하려 몸을 일으키자 낯선 장비가 시야에 들어왔다.
전투복.
자신은 그것을 입고 있었다.
‘뭐지?’
생각이 끝나기도 전에 귓속으로 무전이 들어왔다.
“이동한다.”
주변의 무장 대원들이 동시에 몸을 낮췄다. 멈춰 있었지만 누구도 돌아보지 않았다. 몸이 먼저 그들을 따라갔다. 도시는 폐허가 되어 있었다. 도로는 갈라졌고 건물의 외벽은 뜯겨 나가 내부가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검은 연기가 낮게 깔려 시야를 흐렸다.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몸은 해야 할 일을 알고 있었다.
무전이 울렸다.
“목표 확인. 보급품 확보 후 즉시 철수.”
잠시 뒤 다른 목소리가 이어졌다.
“신규 인원 확인.”
“확인.”
“작전 계속.”
신규 인원.
그게 나라는 걸 설명 없이 알았다. 지정된 위치로 이동했다. 임무는 아군의 퇴로를 확보하는 것이었다. 총을 든 손이 어색했다. 총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무거웠고, 손가락에 닿는 감촉은 지나치게 차가웠다.
멀리서 총성이 터졌다. 손이 살짝 떨렸다. 갑자기 건물 잔해 뒤에서 사람이 튀어나왔다. 적이었다. 총구를 들어 올렸다. 조준선이 상대의 가슴 위에 멈췄다. 쏘면 된다.
‘위험합니다. 위험합니다.’
그런데 손가락이 말을 듣지 않았다. 상대가 무기를 들고 곧장 달려왔다.
‘위험합니다. 발포를 권고합니다.’
‘움직여.’
손가락은 그대로였다.
‘위험. 위험. 위험.’
‘쏴야 돼.’
그 순간 누군가 눈앞을 가로질렀다.
짧은 충돌음이 들렸다. 달려오던 적의 무기가 옆으로 튕겨나갔다. 한 사람이 앞에 서 있었다. 장비의 형태만 봐도 다른 대원들과 격이 달랐다. 그는 적의 손목을 꺾어 나이프를 떨어뜨리고, 몸의 중심을 무너뜨린 뒤 바닥에 눌렀다.
몇 초도 걸리지 않았다.
‘직접 위협이 해제되었습니다.’
그리고 죽이지 않았다. 그 사람이 돌아봤다.
“전투는 처음인가?”
거친 숨을 한 번 골랐다.
“...예!”
“이름은?”
“에반입니다!”
그는 총구를 천천히 아래로 눌렀다.
“긴장하지 마라. 우리는 적을 죽이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교전 상황을 피하는 것은 잘못된 행동이 아니다. 교전수칙은 이미 숙지했을 텐데?”
“...죄송합니다. 아무것도 못 했습니다.”
“괜찮다.”
그는 짧게 주변을 확인했다.
“그래서 우리가 있다.”
그 말이 메아리처럼 귀에 멤돌았다.
그가 다시 물었다.
“이번 작전의 목적은 보급품이다. 에반, 너의 임무는?”
“아군의 퇴로를 확보하는 것입니다.”
“좋다. 이미 잘하고 있다.”
그를 올려다봤다. 그는 무너진 도로 너머를 가리켰다.
“다른 퇴로가 있다면 지금의 퇴로는 포기해도 된다. 교전수칙에는 우선순위가 있을 텐데?”
기억을 더듬어 대답했다.
“...맞습니다. 교전을 피하는 것이 상위 수칙입니다.”
“좋다. 임무를 계속해라, 에반.”
그 말을 남기고 그는 다시 전장으로 뛰어들었다. 움직임이 너무 빨라 눈으로 따라가기 어려웠다. 한동안 멍하니 바라보다가 정신을 차렸다.
주변을 살폈다. 무너진 외벽 사이로 사람이 한 명씩 지나갈 수 있는 좁은 통로가 보였다.
‘여기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퇴로로 사용 가능합니다.’
‘다행이야.’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계속해서 움직였다.
얼마 뒤 무전에서 작전 종료가 선언되었다.
“보급품 확보. 전원 철수.”
“신규 인원 생존 확인.”
잠시 뒤 그 대원의 목소리가 덧붙었다.
“고생했다. 전원 철수!”
주변을 둘러봤다. 그 대원은 보이지 않았다. 대신 그의 말만 머릿속에 남아 있었다.
‘우리는 적을 죽이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
에반의 시야가 갑자기 크게 흔들렸다.
총성. 폭발. 금속이 찢어지는 소리.
누군가가 외쳤다.
“뒤다!”
‘위험. 위험. 위험. 위험. 위험.’
에반이 돌아보는 순간 새하얀 빛이 시야를 삼켰다.
숨을 거칠게 들이마시며 눈을 떴다.
새벽이었다.
자신의 방. 익숙한 천장. 심장이 빠르게 뛰고 있었다. 메런은 한동안 꼼짝하지 않고 누워 있었다.
“...꿈?”
꿈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많은 것이 남아 있었다. 총의 무게. 온도. 연기의 냄새. 무너진 도로의 감촉. 폭발. 그리고 처음 보는 사람의 목소리. 메런은 어둑한 천장을 바라봤다. 한참 뒤 아주 작게 중얼거렸다.
“...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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