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M 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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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 귀가

의료시설을 나왔을 때는 해가 조금 기울어 있었다.

아침에 들어올 때와 달라진 것은 별로 없었다. 도로 위로 무인 차량이 지나갔고, 건물 사이의 광고가 천천히 바뀌었다. 의료시설 입구에서는 다음 순서의 학생들이 부모와 함께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메런은 계단을 내려오다 뒤를 한번 돌아봤다.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저 안으로 들어가는 쪽이었다. 지금은 끝나서 나오는 쪽이었다.

“야.”

딘이 앞에서 불렀다.

“안 와?”

“가.”

메런이 걸음을 재촉했다. 케이는 자기 손을 펴봤다가 다시 쥐었다.

“진짜 아무 느낌도 안 난다.”

딘이 말했다.

“나도.”

“아까는 초사이언 된다며.”

“내가 언제.”

“아까 병실에서.”

“쟤가 그랬거든?”

딘이 메런을 가리켰다. 메런이 피식 웃었다.

“둘 다 비슷한 말 했어.”

셋은 잠시 함께 걸었다. 성인식이 끝났다는 사실에 비해 거리는 너무 평범했다. 케이가 자기 머리 옆을 손가락으로 두드렸다.

“근데 진짜 있긴 한 거지?”

“뭐가.”

“AI.”

딘이 말했다.

“난 아직 대답 안 하잖아.”

“나도.”

둘의 시선이 메런에게 향했다. 메런은 괜히 앞을 봤다.

“왜.”

“넌 되잖아.”

“한 번.”

딘이 어이없다는 얼굴을 했다.

“한 번이면 된 거 아니냐?”

“그런가.”

말은 그렇게 했지만 메런도 잘 몰랐다. 아까 진료실에서는 분명했다. 자신의 생각과는 다른 무언가. 짧고 정확한 문장.

연결 상태 확인.

생체 상태 안정.

통증 억제 수준 정상.

그런데 의료시설을 나선 뒤로는 아무 말도 없었다. 갈림길이 나오자 케이가 먼저 멈췄다.

“밥은 다음에 같이 먹자. 집에서 기다린대.”

딘도 몸을 돌리며 말했다.

“그럼 나도 간다.”

메런이 손을 들었다.

“내일 봐.”

딘이 몇 걸음 가다가 돌아봤다.

“메런.”

“응?”

딘은 잠시 메런을 보더니 말했다.

“내일 공 찰 거지?”

메런이 웃었다.

“당연하지.”

“오케이.”

딘은 그걸로 됐다는 듯 돌아섰다. 케이는 메런을 한번 바라봤다.

“무리하지 말고.”

“너도.”

“난 공 안 차거든.”

“그거 말고.”

“알겠어.”

케이가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내일 봐.”

둘이 서로 다른 방향으로 멀어졌다. 메런은 다시 혼자가 됐다. 한동안 걷다가 문득 생각했다.

‘AI.’

이번에는 기다릴 필요도 없었다.

‘네.’

메런의 걸음이 아주 조금 느려졌다.

‘진짜 있네.’

대답이 없었다. 메런은 잠깐 기다렸다.

‘지금 내 말 들리는 거야?’

‘현재 신경 신호를 통한 의사 전달을 인식하고 있습니다.’

“…….”

길을 걷던 메런이 피식 웃었다. 말투가 꼭 병원 안내 시스템 같았다.

‘내가 생각하는 걸 전부 아는 건 아니지?’

잠시 뒤 대답이 돌아왔다.

‘현재 의도적으로 전달된 신호는 정확하게 파악되고 있습니다.’

아까 이안이 설명했던 것과 비슷했다. 메런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

이번에도 대답은 없었다. 필요한 말만 했다. 그게 오히려 조금 편했다.

현관문을 열자 익숙한 냄새가 났다.

“다녀왔어요.”

거실에 있던 어머니가 바로 고개를 들었다.

“왔어?”

소파에 앉아 있던 아버지도 몸을 일으켰다.

“끝났냐?”

“네.”

방문이 열리더니 여동생이 뛰어나왔다.

“오빠!”

메런은 신발을 벗다가 고개를 들었다.

“왜.”

“뭐 나왔어?”

“뭐가.”

“특질!”

“얘, 오빠 좀 들어오게 놔둬.”

어머니가 웃으며 말했다. 여동생은 한 걸음 물러났지만 눈은 메런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신체?”

메런은 가방을 내려놓았다.

“아니.”

“그럼 밸런스?”

메런이 잠시 입을 다물었다.

“두뇌.”

여동생이 눈을 깜빡였다.

“오빠가?”

메런의 눈썹이 올라갔다.

“너도 똑같은 반응이네.”

“딘 오빠랑, 케이 언니도?”

여동생이 메런을 위아래로 훑어봤다.

“안 어울려.”

“특질에 어울리는 얼굴도 있냐?”

“몰라.”

어머니는 웃지 않았다. 메런을 잠시 바라보고 있었다. 아버지도 비슷했다.

“두뇌특질?”

“네.”

아버지가 다시 물었다.

“확실히?”

메런이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병원에서 검사했는데요.”

“아니, 그냥.”

아버지가 뒤늦게 웃었다. 어머니가 말했다.

“엄마도 조금 놀랐네.”

“어제는 예상대로 안 나올 수도 있다면서요.”

“그렇지.”

어머니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고 아무 예상도 안 한 건 아니니까.”

아버지도 웃었다.

“나도 신체 쪽일 줄 알았어.”

여동생이 손을 들었다.

“나도.”

메런이 바로 그녀를 봤다.

“넌 내가 맨날 공 찬다고 그런 거잖아.”

“그게 제일 정확한 이유 아냐?”

“아니거든.”

어머니가 웃었다.

“일단 앉아봐.”

메런이 거실로 들어왔다. 어머니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메런의 뒤통수로 향했다.

“몸은 괜찮아?”

“네.”

“아픈 데는?”

“없어요. 뒤에 조금 이상한 느낌 있었는데 지금은 거의 괜찮아요.”

“어지럽거나 그런 건?”

“없고요.”

그제야 어머니의 표정이 조금 풀렸다.

“다행이다.”

아버지가 물었다.

“딘이랑 케이는?”

“둘 다 괜찮아요.”

“특질은?”

“딘은 신체.”

아버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메런이 웃었다.

“아빠도 그러면서 내 건 틀렸잖아요.”

“딘은 맞췄잖아.”

“케이는?”

어머니가 물었다.

“두뇌요.”

이번에는 여동생이 말했다.

“그건 어울린다.”

메런이 그녀를 봤다.

“대체 뭐가 기준인데?”

“척 보면 안다구.”

“제일 못 믿을 기준이네.”

여동생은 신경 쓰지 않았다.

“근데 오빠.”

“왜.”

“AI 있어?”

메런이 잠깐 멈췄다.

“있어.”

“진짜?”

“응.”

“말해?”

“응.”

여동생이 곧바로 메런의 머리를 바라봤다. 메런이 손으로 시야를 막았다.

“왜 봐.”

“어디 있는지 보려고.”

“보인다고 생각하냐?”

“뒤에 있는 거 아니야?”

“몰라.”

“불러봐.”

“싫어.”

“왜!”

“너 보여주려고 있는 거 아니야.”

여동생이 입을 삐죽였다. 그러다 다시 물었다.

“이름은?”

메런이 잠깐 멈췄다.

“아직 없어.”

“내가 지어줄까?”

“그건 더 싫어.”

“왜!”

거실이 금세 시끄러워졌다. 어머니가 웃으며 주방으로 향했다.

“둘 다 그만하고 손 씻어. 밥 먹자.”

저녁 식탁에는 어제와 비슷한 음식이 올라왔다.

어제와 같은 자리. 어제와 같은 사람들. 다른 것은 메런의 머릿속에 AI가 생겼고, 자신이 두뇌특질이라는 걸 알게 됐다는 것뿐이었다. 여동생은 식사를 시작한 뒤에도 자꾸 메런을 힐끗거렸다. 메런이 결국 물었다.

“왜.”

“그냥.”

“또?”

“뭔가 달라졌나 보려고.”

“아까부터 계속 봤잖아.”

“아무것도 안 달라졌어.”

“그럼 그만 봐.”

아버지가 웃었다.

“당장 머리에서 빛이라도 날 줄 알았냐?”

여동생이 진지하게 말했다.

“조금.”

메런이 웃었다. 어머니가 물었다.

“AI는 바로 연결됐어?”

메런의 젓가락이 잠시 멈췄다.

“아.”

“왜?”

“그게 좀 빨랐대요.”

아버지가 메런을 봤다.

“얼마나?”

“딘이랑 케이는 아직 제대로 연결 안 됐는데 저는 거의 바로 됐어요.”

“의사는 뭐래?”

“흔하지는 않대요.”

어머니의 표정이 아주 조금 굳었다. 메런이 바로 덧붙였다.

“문제 있는 건 아니래요.”

“왜 빨랐는지는?”

“모른대요.”

아버지는 잠시 메런을 바라봤다.

“그래.”

그뿐이었다. 더 묻지 않았다. 메런도 굳이 말을 이어가지 않았다. 여동생이 다시 끼어들었다.

“지금도 있어?”

“어.”

“우리 말 듣고 있어?”

메런은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그러고 보니 자기도 궁금했다.

‘듣고 있어?’

‘주변 음성 정보는 인식 가능합니다.’

메런이 잠깐 눈을 깜빡였다.

“듣고 있대.”

여동생의 눈이 커졌다.

“진짜?”

“응.”

여동생이 갑자기 허리를 곧게 폈다.

“안녕하세요.”

메런이 웃음을 터뜨렸다.

“뭐 하냐?”

“인사하잖아.”

“왜 네가 내 AI한테 인사해.”

“같이 사는 거 아니야?”

메런이 입을 열다가 멈췄다. 아버지가 웃었다.

“틀린 말은 아니네.”

여동생이 의기양양하게 메런을 봤다.

“봐.”

“됐어.”

어머니도 웃었다. 조금 전까지 남아 있던 긴장이 그제야 풀렸다. 식탁에서는 다시 병원 이야기가 이어졌다. 마취가 어땠는지. 수술은 얼마나 걸렸는지. 뒤통수의 이물감은 어떤지. 딘이 AI를 불렀다가 무시당했다고 투덜거린 이야기까지 나왔다. 여동생은 그 대목에서 한참 웃었다. 그러다 어머니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메런.”

“네.”

“스매시는?”

메런의 젓가락이 잠깐 멈췄다. 아버지가 어머니를 봤다가 다시 메런을 봤다. 메런은 밥을 한 숟갈 먹고 말했다.

“할 수 있대요.”

어머니의 표정이 조금 밝아졌다.

“그래?”

“두뇌특질이라고 신체 능력이 낮다는 뜻도 아니고, 운동하면 안 되는 것도 아니래요.”

“그럼 됐네.”

여동생이 바로 말했다. 메런은 대답하지 않았다. 아버지가 그 모습을 잠시 봤다.

“근데 그게 다는 아니고?”

메런이 아버지를 봤다.

“프로는 작은 차이로도 달라질 수 있대요.”

식탁이 조금 조용해졌다.

“지금 결과만 가지고 된다, 안 된다 하는 건 너무 이르고.”

메런이 말을 이었다.

“앞으로 얼마나 적응하는지 봐야 한대요.”

어머니가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어휴.”

메런이 웃었다.

“왜요.”

“그렇게 좋아하는데.”

“못 한다는 것도 아니라니까요.”

“알아.”

어머니는 바로 대답했다.

“두뇌특질이 싫다는 얘기가 아니야.”

메런도 알고 있었다. 어머니가 걱정하는 것은 그게 아니었다. 아버지가 물었다.

“너는 어때?”

“뭐가요?”

“결과가 마음에 안 드는 거야?”

메런은 잠깐 생각했다.

“아니요.”

생각보다 대답은 쉽게 나왔다. 두뇌특질이라는 말 자체가 싫지는 않았다. 아직 자기 이야기 같지 않을 뿐이었다. 아버지가 다시 물었다.

“그럼 스매시가 어떻게 될지 모르겠는 게 싫은 거고?”

이번에는 대답이 바로 나오지 않았다. 메런은 숟가락 끝을 내려다봤다.

“……아마도요.”

아버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뒤로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메런도 기다리지 않았다. 잠시 뒤 아버지가 밥을 한 숟갈 뜨며 말했다.

“그럼 아직 모르는 거네.”

메런이 고개를 들었다.

“네?”

“된다도 아니고, 안 된다도 아니고.”

“그렇죠.”

“그럼 해보면 되지.”

메런은 아버지를 바라봤다. 아버지는 별일 아니라는 듯 계속 식사를 했다.

“어제도 말했잖아.”

메런은 어제 저녁을 떠올렸다. 특질은 내일 나오고. 네가 하고 싶은 건 이미 알고 있잖아. 메런이 작게 웃었다.

“네.”

어머니가 말했다.

“당장 뭘 결정할 필요도 없고.”

“학교 가면 이것저것 해볼 거 아니냐.”

아버지가 말을 이었다.

“하다 보면 지금보다 아는 게 많아지겠지.”

메런은 고개를 끄덕였다. 여동생이 갑자기 말했다.

“그럼 프로 되면 나 경기장 데려가는 거 아직 유효해?”

메런이 그녀를 봤다.

“그건 원래부터 무효였는데.”

“왜!”

“시끄러우니까.”

“엄마!”

어머니가 웃었다.

“그 얘기는 어제도 하지 않았니?”

다시 식탁이 시끄러워졌다.

밤.

방으로 들어온 메런은 문을 닫았다. 집 안의 소리가 조금 멀어졌다. 벽에는 케인 선수의 포스터가 그대로 붙어 있었다. 작은 트로피. 학교 대회 사진. 경기 기록. 훈련 계획. 어제와 달라진 것은 하나도 없었다. 메런은 책상 옆에 놓여 있던 축구공을 집었다. 손에 익은 무게. 바닥에 내려놓고 발바닥으로 천천히 굴렸다.

왼쪽.

오른쪽.

다시 왼쪽.

몸도 그대로였다. 감각도 그대로였다. 메런은 공을 발등으로 가볍게 띄웠다.

툭.

한 번. 다시.

툭.

두 번.

세 번째 공을 손으로 받아냈다. 별 차이는 느껴지지 않았다. 메런은 잠시 공을 내려다봤다. 두뇌특질. 낯선 말이었다. 하지만 공까지 낯설어진 것은 아니었다.

‘AI.’

‘네.’

메런은 잠깐 생각했다.

‘내일 운동해도 돼?’

‘현재 회복 상태가 유지될 경우 가벼운 신체 활동은 가능합니다.’

메런이 웃었다.

‘가볍게?’

‘수술 직후 과도한 신체 활동은 권장하지 않습니다.’

메런은 침대에 걸터앉았다.

‘딘한테도 그 얘기 좀 해줘.’

‘타인의 AI와 직접 통신하는 기능은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그건 아쉽네.”

메런은 공을 다시 바라봤다. 어머니는 놀랐다. 아버지도 놀랐다. 자신도 놀랐다. 그런데 아직 아무것도 끝난 것은 없었다. 할 수 없다는 말을 들은 것도 아니었다. 그저 어제까지 당연했던 것이 오늘은 조금 덜 당연해졌을 뿐이었다. 메런은 공을 침대 옆에 내려놓았다.

내일이면 다시 학교에 간다. 딘도 있을 것이다. 케이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아마. 어제까지 없었던 것들도 조금씩 시작될 것이다. 메런은 불을 껐다. 어둠 속에서 공의 둥근 윤곽이 희미하게 보였다.

한동안 그것을 바라보다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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